[새정치개혁] 송강호의 세월호 인식에 공감하는 이유
송강호의 세월호 인식에 공감하는 이유
술에 취해 했던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참신성도 없고 재미도 없을뿐더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한두번이지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면 고욕도 이런 고욕이 또 없다. 지겹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 그 자리를 피하거나 화를 내거나 양단 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그리고 듣는 사람도 피곤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인데도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외면하고 회피할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했던 얘기를 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있는 걸까. 오늘 포스팅은 우리사회를 향해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에 지난 3일 아주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영화의 전당 비프힐 정문 앞에서 오후 3시30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영화인 모임' 기자회견이 열린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차 모인 영화인들이 이 자리에서 선 이유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는 성명을 내고 "지난 8월9일부터 동조 단식에 들어갔던 영화인들로서는 유가족을 배제한 채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야의 세월호법 합의는 허탈감을 넘어 참담한 합의문"이라고 비판하며 "백번 양보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는 최소한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여 특검후보군을 형성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유가족을 배제하고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울 수 없는 여당이 주도하는 특별법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다"며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원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성명서에는 모두 1123명의 영화인들이 서명을 했다. 비장하고 숙연했던 이날의 기자회견을 통해 영화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배포된 선언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4월16일 이후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이 밝혀졌는가. 무엇이 규명되었고, 어떤 대책이 세워졌는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사회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 낸 것이 없다"<영화인 1123명 선언 글 중에서>
정말이지 그렇다. 박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참사의 명확한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이전과는 다른 대한민국를 건설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었다. 그러나 영화인들의 지적처럼 참사 이후 6개월이 다 되가도록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진상규명도 요원해졌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 만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상태의 진상규명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요식행위 그 자체다. 이미 과거의 사례들과 경험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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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누누이 강조하지만 세월호의 인허가부터 시작해서 운항, 그리고 사고 이후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이 고스란히 드러난 최악의 참사였다. 따라서 진상을 온전히 규명하려면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책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진상규명이 되면 될수록 정치적 타격은 물론이고 정권 차원의 치명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자신들의 목을 겨누는 칼이자 창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배우 송강호씨는 지난 3일 제23회 부일영화상의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기억이라는 말이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변호인> 주인공의 치열하고 헌신적인 삶과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참담하게 고통스러운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게 타인과 소통하고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인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의 인식은 우리사회에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인들이 정치권력에 맞서 사회현안에 대해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렇게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한 목소리로 정부여당을 비판한 적은 일찌기 없었다.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그들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는 것인지를 영화인들이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옳다고 믿는 가치에 더 우선 순위에 두었다.
불의한 시대에 불의에 맞선다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나 할 일이다. 이런 시대에는 적당히 불의에 타협하고 적당히 순응하며 지내야 별 탈없이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왔고, 또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불의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도 두눈 찔끔 감고 고개를 돌려 버리면 그 뿐이다. 불의한 시대에 그 불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행동하는 건 무모함 그 자체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고 편히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어리석고 무모한 사람들, 남들이 보기에 무모하고 위험해 보이는 발칙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주체할 수 없는 청량감에 에너지가 샘솟고 없던 희망마저 다시 생겨난다. 비겁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지던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고, 무력하기 짝이 없었던 나약한 가슴마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사람들의 끈질김 덕분에 정치권력에 의해 감추어졌던 진실이 밝혀지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왔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디까지 밝혀질 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보편적 상식이 살아있는 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 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1123명에 달하는 영화인들의 비장한 결의가 이를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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