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DJ를 해치는 방법”


이 순간에도 피말리기는 자행되고 있다’

 

입으로 죽이건 칼로 죽이건 결과는 같다. 직접으로 죽이건 간접으로 죽이건 본질은 하나다. 쌍룡차 노동자를 학대하는 식으로 서서히 피말려서 해치든 문창극을 부려서 면전에 대놓고 갈궈서 해치든 결과는 같다.

 

문병을 와서 무슨 소리를 했건 간에 그는 명색이 대통령이다. 직계든 방계든 문창극은 그의 하수인이다. 앞으로는 웃으면서 덕담하고 뒤로는 칼을 휘두른다. 사태는 점점 커져서 구족을 멸하는 지경이 된다.

 

왕조시대에 늘 있어왔던 일이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하나씩 제거할때 마다 두 명의 새로운 적이 만들어진다. 결국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다.

 

노무현 씹을 때 이미 과녁은 DJ에게로 겨냥되어 있었다.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그것이 역사의 필연법칙이다. 왕조시대 그 많은 죽음들이 다 짜여진 각본은 아니었다. 각본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굴러간다. 시누이가 괴롭히면 시어미가 말리고 시어미가 때리면 시누이가 말리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뒤로 꼰지르고. 태조는 짐짓 화를 내며 태종을 말렸지만 시늉 뿐이다.

 

태종 이방원 역시 살인에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태조는 태종을 못말리고, 태종 역시 간덩이가 부어서 함부로 설쳐대는 부하들을 못말린다. 선참후계라 했던가. 이심전심으로 알아서 긴다.

 

위에서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가는가만 보고 움직인다. 당장은 문책이 따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득본 자로부터 보상이 나올 것을 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 검찰과 국세청장이 알아서 움직인 결과 이렇게 되었다. 문창극이 휘두른 칼, 김동길이 쏜 독침은 검찰과 국세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본질에서 이명박의 칼이요 독침이다.

 

미실이 입으로 어떤 말을 했건 간에 대남보는 쏘았고 그 살은 미실의 독화살이다. 김형욱을 누가 죽였건 박정희가 죽인 것이며 광주 영령들이 혹 오발된 시민군 총에 맞았어도 전두환 총에 희생된 거다.

 

그것이 정치고 그것이 정치가의 책임이다. 그래서 정치는 무한 책임이다. 허저가 허유를 죽였어도 조조가 죽인 것이다. 왜인가? 원래 그것이 정치시스템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이다. 무한권력에 무한책임.

 

이명박은 지금 즐기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가 직간접으로 수하들을 부려서 결과적으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해친 자로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다고.

 

악독한 사람을 죽이기는 어렵지만 순수한 사람을 해치기는 쉽다. 전여옥 같은 독초를 근절하기 어렵지만 노무현 같은 순수를 제거하기 쉽다. 이명박 죄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은 죄다.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시치미 걸려 날아오르지 못하는 장산곶 매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우리 가슴에 깊은 상처. 신은 우리에게 어떤 소명을 맡기려고 이 상처 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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