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튀니지의 작은 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med Bouazizi)라 불리우는 청년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학 공부를 마쳤지만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부아지지는 아랍 문화권에서 작지않은 직군을 형성하고 있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점 일을 시작했다. 새벽 일찍 도매상으로 달려가 싼 값으로 채소와 과일을 구입하고, 이를 하루 종일 시장 한 구석에서 다시 되파는 일이다.

노점은 튀니지에서도 불법이다. 때문에 부아지지는 부패한 경찰의 집요한 단속이라는 가중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갔다. 어느 날 경찰은 부아지지의 채소와 과일을 압수해 갔고, 이에 부아지지는 안타깝게도 ‘분신’으로 저항했다. 2010년 12월 17일의 일이다. 당시 부아지지의 부채는 26세 튀니지 청년이 쉽게 감당할 수 없는 200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이 가슴아픈 소식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었고, 지난 1월 4일 세상을 떠난 부아지지에 대한 추모운동과 튀니지 독재정부에 대한 저항운동은 마침내 ‘재스민 혁명(위키 정보)’으로 발전해 갔다. 그리고 그가 분신한 지 28일만인 지난 1월 15일, 23년간 장기집권하고 있던 튀니지 대통령 벤 알리(Ben Ali)는 권자에서 물러나 망명길에 올랐다.

부아지지의 죽음은 튀니지 국경을 뛰어넘어 인근 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된 시민저항의 도화선이 된다. 1월 25일 이집트를 시작으로, 2월 3일 예멘, 그리고 2월 5일 시리아로 시민저항은 확산되었다. 또한 2월 12일 알제리과 2월 14일 바레인에는 미국, 유엔(UN), 나토(NATO) 등 어떤 외국 정부 및 기관의 도움없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시민저항이 예견되고 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아랍문화권의 시민혁명을 속보 또는 기획보도로 전하는 세계 각국 언론들은 해당 국가의 정부에 대해 ‘장기독재’와 ‘부패’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이 지역에서 지속되었던 독재, 검열, 고문에 대한 보도는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언론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또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외무장관의 최근 예외적인 아랍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발언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서구언론과 서방정부는 그동안 진행된 아랍국가의 서슬 퍼런 강권통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단 말인가?

위키릭스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은 이미 2008년 튀니지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도적의 무리처럼 국가를 강탈하고 있다는 소상한 보고서를 자국 정부에 제출했다(출처보기). 그러나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가 망명하기 3일 전인 지난 1월 12일 힐러리 미국 외무장관은 “미국정부는 튀니지 정부와 저항하는 시민 사이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것이다”며 그동안 미국 정부와 튀니지 정부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출처보기).

또한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는 어떠한가? 지난 30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며 어떤 야당도 인정하지 않으며 저항세력에 대해 고문하고 검열하는 이집트 독재정부에 대해 미국정부는 1979년부터 매년 평균 13억 달러의 군사원조와 평균 8억1500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미국 하원 보고서 보기). 또한 지난 2010년 6월 비판적인 블로거가 공개처형 당하는 국가와 미국은 우방임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출처보기).

 

나아가 미국 부통령 조셉 바이든은 공개적으로 무바락 이집트 대통령을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옹호하기도 한다(출처보기). 지난 1월 25일 이집트의 시민저항이 본격화된 직후, 클리턴 미국 외무장관은 이집트의 정국이 ‘안정적’이다라고 평가한다(출처보기). 그 안정적인 나라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차단이 이뤄졌다(아래 그림 참조). 그 안정적인 나라에서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이뤄졌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흘리며 죽어갔다.

 

   
 
이렇게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이야기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스라엘과의 조건없는 연대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지지를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유와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미국, 나아가 범서방세계의 중동정책이 가진 이중성을 세상에 폭로하고 새로운 중동질서의탄생을 가능케하는 것은 그 어떤 서방국가의 지원이 아니다. 그 어떤 외부단체 도움이 아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시리아, 알제리, 바레인 등 아랍국가의 거리 거리에 넘쳐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여성과 남성의 평등권에 대한 절규, 부패한 정부에 대한 처절한 거부는 부아지지라는 26세 청년의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찬 분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 등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현장을 생중계하던 서구언론이 거리 시위에 두려움을 느끼며 한발짝 물러설 때, 알자지라(Al-Jazeera)가 위성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 아랍 시민혁명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들은 시위를 조직하며, 분노와 감동실시간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다.

아랍국가들의 시민혁명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진행된 시민혁명의 불길이 다른 아랍국가들에 번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튀니지 한 청년의 몸을 태웠던 불길과 이집트에서 쓰러져간 100여 명의 절규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