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아이티의 진실



 

                   ‘절망의 땅’ 아이티의 진실1)


                                                                                               민주노동연구소 정세팀

 

  아이티 지진사태가 일어난 지 오늘로 한 달이 되었다. 새해 벽두 1월 12일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 사태는 9백여만 명의 인구 가운데 사망 35-50만 명, 부상 30만 명, 가옥 파괴 25만 채, 집 잃은 사람이 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증유의 피해를 낳아 세계적으로 커다란 관심과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연일 보도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는 글도 온·오프라인에 적잖이 실렸다. 이처럼 사태가 많이 알려지고 그 원인도 웬만큼 짚었는데, 우리가 굳이 이 글을 써서 발표할 까닭이 있는가? 참상은 많이 알려졌지만 진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처방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 ‘절망의 땅’ 아이티


  아이티 지진 사태는 천재(天災)이기보다 인재(人災)다. 다음의 사실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첫째, 현대에 손꼽히는 지진 사태로는 간토(1923년, 일본)2), 탕산(1976년, 중국)의 지진과 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휩쓴 지진성 해일(일명 쓰나미, 2004년), 수마트라 지진(2004년, 인도네시아), 인도와 카슈미르 지진(2005년), 최근의 쓰촨 대지진(2008년, 중국) 등이 있다. 그런데 이번의 아이티 지진은 앞에 열거한 것들 가운데 리히터 7.0으로 강도가 가장 약했으면서도 피해가 가장 컸다.3)

 

  둘째, 미국 과학자들이 몇 해 전부터 아이티의 지진 가능성을 경고했는데도, 국가적 또는 국제적 차원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셋째, 아이티의 지진 대처능력은 처참할 정도로 빈약하다. 내진(耐震)설계 된 건물은 아예 없고, 철근을 넣은 건물조차 많지 않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철근 대신 철사를 넣었다고 한다.

  넷째, 아이티는 지진뿐 아니라 여타의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무방비 상태고 무대책이다. 그 결과 아이티는 2000년대에 들어 거의 해마다 허리케인으로 물난리를 겪었고, 이 물난리로 2008년 한 해에만 8백 명이 숨지고 1백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그에 비해 바로 이웃한 쿠바는 같은 허리케인을 맞았으나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르포 기사들은 아이티 사람들의 심정을 전해 주었는데, 그 중에는 “아이티는 죽었다.”, “하늘이 벌을 내렸다.”는 넋두리가 많았다. 지진을 한탄할 뿐 아니라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회국가를 한탄하는 말이다. 이 말이야말로 아이티의 진실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아이티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인구의 4분의 3이 UN 극빈층 기준인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인구의 과반수가 하루 1달러 수준의 벌이에 만성 영양실조 상태이고 문맹이다. 15세 미만 어린이가 인구의 ⅖인 4백만 명 가까이 되는데, 초등학교를 마치는 어린이가 27%에 불과하다. 남의 집 더부살이로 사는4) 아이도 40만 명이나 된다. 평균 수명이 52세에 그치고, 영아 사망률과 에이즈(AIDS) 감염률이 아주 높다. 전깃불을 밝히는 집이 10%밖에 안 된다. 그러나 아이티 민중의 가난은 무엇보다 ‘진흙 과자5)’로 끼니를 잇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배층은 인구 5%의 뮬라토(흑백 혼혈인)로, 대다수 흑인들이 아이티 크레올어를 쓰는 데 반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6) 상위 1%가 부의 절반을 차지하여 ‘1 : 99 사회’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 특권적 지배층에게는 자주`자립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정부 예산의 3분의 1이 해외원조로 충당되고 있으며, 밑바닥 민중 가운데는 해외로 떠난 가족과 친지(2백만 명가량 된다)의 송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령 2007년의 송금액은 16억 5천만 달러인데, 이는 아이티 국가 1년 예산의 두 배, 국내총생산의 30%에 달한다.

  지진 사태로 아이티 국가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기실 아이티 국가는 이미 2004년부터 자국 군대가 아니라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 평화유지군(PKO)이 버텨 오고 있다.     


  아이티는 1960년대부터 미국의 조립 공장이 들어오는 등 자본주의 발달7)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농촌의 몰락도 진행되어 살 길을 잃은 농민들이 차츰 수도권 빈민가로 몰려들었다. 한편 커피 가격이 폭락하자 커피 농민들이 대부분 숯 굽는 일로 전환하는 바람에 숲이 국토의 2%만 남을 정도로 다 소멸해버렸다. 또 1986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대가로 쌀 시장이 개방되고 1995년 수입쌀 관세가 30%에서 3%로 낮춰지자, 자급자족해 오던 쌀농사가 거덜 나고 덤핑으로 들어온 미국 쌀이 시장을 점령했다. 또 미국은 가축 전염병을 계기로 농민들에게 토종 돼지를 전면 폐사시키고 사육비가 훨씬 많이 드는 미국 돼지를 사육하도록 강요하여 축산업을 위축시켰다. 이에서 보듯이 아이티 민중의 빈곤이 극심해진 것은 시장경제란 이름 아래 자본주의이식되면서 농업과 농촌이 파탄 난 탓이다.

 

  이같이 농업과 농촌을 깡그리 무너뜨린 결과로 실업률이 75% 안팎에 이르고 있다. 그로 인해 임금 수준이 턱없이 낮아져서 이웃 도미니카의 4분의 1에 불과한 하루 2달러에 머물러 있다. 이런 초저임금에 2008년 4월에는 세계적인 농산물 값 앙등이 겹쳐 식량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현실이 이러하니 ‘아이티는 절망의 땅’이라는 묘사가 나오는 것이다. 

  


     2. 아이티의 처절한 역사


  1) 노예에서 주인으로(15~19세기: 자본의 시대)


  1492년 콜럼버스가 이스빠뇰라 섬에 당도했을 때 이곳에는 5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카리베족 선주민이 살고 있었다. 한데, 스페인 자본주의의 갖은 악행과8) 외지에서 묻어간 전염병 창궐로 삼십년 만에 선주민이 다 멸종했고, 스페인은 금 채굴과 면화 재배를 위해 흑인 노예를 들여왔다.

 

  17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스페인의 국력이 약화되자, 프랑스가 해적질로 스페인을 압박하다가 1697년 섬의 서쪽 일부인 지금의 아이티를 빼앗았다. 이렇게 하여 아이티 민중은 타율적으로 프랑스령과 스페인령으로 갈라졌다. 아이티 민중은 1804년 프랑스에서 독립했는데, 이 혁명 과정에서 1822년 섬의 동쪽도 스페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한 나라로 합쳐졌다. 그러나 1844년 스페인의 개입으로 옛 스페인령 지역이 따로 갈라져 나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나중에 독립하여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되었다.

  식민지와 분단, 해방과 통일, 재 분단으로의 파란만장의 과정이다. 

 

  프랑스는 이스빠뇰라 섬의 일부를 접수한 뒤, 대규모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웠다. 이 선진 설탕산업으로 하여 아이티는 ‘앤틸리스의 진주’라 불릴 만큼 흥청거리는 곳이 되었다.9) 프랑스는 18세기 한때 국부(國富)의 4분의 1을 이 섬에서 생산한 설탕과 커피, 담배로 벌어들였다. 아이티는 당시 유럽에서 소비되는 설탕의 40%, 커피의 60%를 생산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봉홧불이 오르자, 자유 평등 박애의 근대 혁명사상에 고무된 이곳의 흑인 노예들이10) 1791년에 봉기를 일으켰다. 근대 설탕농장에서 집단의식과 규율을 터득한 노예들이 삽과 쇠스랑을 들고 프랑스, 영국, 스페인 군대에 맞섰고, 1804년 드디어 ‘아이티 공화국’을 세웠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 두 번째 독립국이요, 흑인들이 세운 첫 나라요, 스파르타쿠스 이래로 노예들이 혁명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였다.

 

  아이티 민중은 근대 인류사의 선구자였다. 백인 부르주아지들이 주도한 반봉건 혁명을 흑인 노예들이 나서서 이어 받았으니 18세기를 뒤흔든 혁명 3부작의11) 하나로 꼽힐 만하다. 더구나 아이티 혁명은 정치혁명인 동시에 사회혁명이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고, 토지개혁으로 플랜테이션이 해체되었다. 그만큼 파장이 컸다. 시몬 볼리바르가 이 혁명에 고무되어 1811년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세웠다. 그에 응답해 아이티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민중의 독립운동에 돈과 무기와 군대를 지원했다.

 

  반면, 미국 지배세력은 아이티 혁명 소식이 전파되는 것을 악착같이 막았다. 미국 노예들의 일부도 아이티 소식을 듣고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12) 그런 연유로 혁명의 선두주자에게 가혹한 핍박을 가했다.13) 미국은 프랑스와 함께 해상 봉쇄와 무역제재를 가했다. 이로 인해 아이티 민중은 1804년 독립하고 나서 인구의 ⅓이 절멸되고 국토가 거의 다 파괴되는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했다.

 

  1823년,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미국과 프랑스는 그 대가로 1억 5천만 프랑의 터무니없는 독립 배상금을 강요했다. 그 돈은 지금의 2백10억 달러에 맞먹는다. 이 돈은 1947년에 가서야 다 갚았는데, 이를 갚기 위해 미국 은행에 돈을 빌리기 시작하면서 아이티는 건국 초부터 외채의 덫에 빠졌다. 아이티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는 나라였는데, 배상금 명목으로 프랑스가 삼림을 마구 벌채해 가는 바람에 19세기 중반에 이미 숲의 상당 부분이 거덜 났다.    

 

  한편, 1844년 아이티로부터 도미니카가 분리 ‘독립’했다. 그러나 이 분리 ‘독립’ 자체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 분할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도미니카는 1844년 아이티로부터 갈라져 나온 뒤 얼마 못가서 1859년 다시 스페인의 손아귀 안에 들어갔고, 한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그렇다면 도미니카의 이 ‘분리’를 누가 부추겼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 다시 미국의 보호령으로, 그리고 신식민지로(제국의 시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던 19세기 말 무렵부터 아이티는 서구 열강들의 사냥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스페인은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프랑스와 독일과 미국이 앞을 다투어 이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여 라틴아메리카의 패권을 차지한 후 아이티에도 차츰 영향력을 넓혀 갔고, 1915년에는 마침내 아이티를 점령하여 보호령으로 삼았다.14)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제국이 카리브 해에 해군기지를 확보하고자 아이티를 점령할까봐 선제적으로 침략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티 정부가 제국주의 상호간의 전쟁이라는 기회를 틈타 유럽과 미국 자본이 투자, 소유하고 있던 아이티은행의 금괴를 몰수하려 했던 것도 침략의 숨은 원인이었다. 반제(反帝) 움직임에 대한 역공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군사점령 기간에 외국인의 토지소유와 투자를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삭제하여 자본 수출의 길을 닦았다. 1918년 헌법개정 투표는 해병대의 총부리 아래 치러졌고, 유권자의 5%만이 투표에 참여했는데도 합법으로 인정되었다. 그 후 숱한 농장이 미국 자본의 소유로 넘어갔으며, 토지를 잃은 아이티 농민들은 설탕을 항구로 실어 나르는 도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다. 노예제도도 사실상 부활했다. 미국은 19년의 점령 기간 동안 6만 명을 학살했다.

 

  1934년, 군사점령 통치에 대한 아이티 민중의 저항이 거세게 터져나오자 미국은 한 발 물러나서 군대를 철수하고 간접통치로 전환했다. 그리고 아이티는 미국의 신식민지로 된다. 이렇게 미국의 신식민지가 된 아이티는 2차 대전 때는 미국을 도왔고 6.25전쟁 때는 미국의 조종에 따라 한국에 재정지원을 했다.

 

 

  이에 맞서 20세기 내내 제국주의에 대한 아이티 민중의 저항이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다. 보호령 시대에는 ‘카코스’라는 농민 게릴라들이 아이티 북부에서 토지를 빼앗긴 기층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저항투쟁을 벌였다. 그 지도자 샤르멘느 페랄트는 80년대 후반에 와서 외세에 저항하는 아이티 민중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1934년의 미군 철수도, 1929년에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그 배경이 되고 커피 값 폭락이 그 도화선이었지만, 민중의 저항이 결정적 요인이었다.15)  

 

  1946년에는 독재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 좌파 성향의 에스티메 정권이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소 연합국의 승리로 아시아와 유럽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파고가 거세게 일어나던 때였다. 에스티메 정권은 미국 소유의 바나나 농장을 국유화하고, 소득세를 신설하고, 농업의 집단농장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반발을 제압하지 못해 연임에 실패했다. 후임인 마글루아르 대통령은 미국의 지시를 따랐으며, 장기 집권을 꾀하다가 민중에 의해 쫓겨났다.   

 

        

   3) 신식민지 권위주의 통치와 민중의 저항(쿠바혁명 이후 오늘까지)


  <뒤발리에주의>

 

  1957년부터 1986년까지는 뒤발리에 부자(父子)가 권위주의 유혈통치를 한 시대였다. ‘파파 독’이라고 불리는 아버지 뒤발리에는 흑인 민족주의를 내걸고 부(富)의 재분배도 약속하여 집권했으며,16) 아이티 토속종교인 부두교를 믿는 밑바닥 민중들에게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게 했다. 그는 국가보안대를 창설하고 1만 명 규모의 사실상의 테러단인 ‘마쿠테’라는 이름의 친위 자위대를 만들어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마쿠테는 처음엔 부두교의 농촌 사제(司祭)들을 조직해 주술의 힘으로 뒤발리에를 우상화하는 조직이었는데, 점차 테러의 임무를 맡아 끔찍한 살육을 벌이게 된다.

 

  뒤발리에는 노조와 시민단체의 결성을 금압했으며, 심지어 국민들이 카키색이나 어두운 색의 옷을 착용하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여서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더불어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다. 1971년까지 ‘파파 독’ 치하에서 3~6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9세의 아들 ‘베이비 독’이 그 공포의 유혈통치를 이어갔다.

 

  이들 부자가 집권한 기간 동안 국가 부채는 18배나 늘어났다. 이들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면서 뒷돈을 챙기는 등 세습기간 동안 아이티 국가 부채와 맞먹는 돈을 착복했다.17) 반면, 1964년 아이티 국민소득은 연간 80달러로 세계 최저였고 문맹률은 90%를 넘었다.

 

  미국은 ‘파파 독’이 처음에 흑인 민족주의를 들고 나오자 한때 그를 경계했으나 곧 의심을 거둔다. 때때로 뒤발리에의 민중 탄압이 심해질 때에 원조를 끊기도 했지만 기본 방침으로는 영구집권을 묵인했다. 아이티 공산당을 탄압하고 쿠바 혁명의 전파를 쿠바의 코앞에서 막아내는 뒤발리에 부자의 역할이 긴요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미국 기업들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초저임금으로 묶어두는 것도 뒤발리에 정권이 미 제국주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였다. 이 임무에 충실한 결과, 1976년에는 48%였던 극빈층이 1985년에는 81%로 늘어났다. 그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1970년대에 아이티 노동자 6만 명을 하루 1.3달러의 기아 임금으로 부릴 수 있었다. 

 


 

  <뒤발리에 없는 뒤발리에주의>

 

  1986년 1월 민중 봉기가 터져 나와 수십만 민중이 거리로 나서자 미국은 서둘러서 아들 뒤발리에를 국외로 내보냈다. 여성들도 역사상 처음으로 거리행진에 나설 만큼 아이티 사람들에게는 감격적인 해방 공간이었다. 아이티 민중은 마쿠테 테러단을 처형하고 부유층의 저택을 몰수하기까지 했다. 다음해에 자유주의적인 신헌법이 제정되었고 마니가 정권, 군부 쿠데타, 역쿠데타, 아브릴 정권, 민중저항으로 아브릴의 사임, 1991년 2월 해방신학자 아리스티드 신부의 집권으로 이어졌다.18)

 

  그러나 아리스티드의 집권에 뮬라토 지배층이 강하게 반대했다. 이들의 사주로 반년 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아리스티드를 쫓아내고 1993년까지 다시 유혈통치가 계속된다. 이 시기에 적어도 3천 명이 살해되었고, 노동조합과 풀뿌리 라디오 방송국이 철퇴를 맞았다. 4만 명이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대부분이 국내로 도로 송환되거나 관타나모 난민 캠프에 갇혔다. 미국은 아이티 군부에게 난민들을 심사하고 체포해 갈 권한을 주었다. 1990년대 초는 군부 세력이, 2000년대 중반에는 테러단인 아이티진보전선(FRAPH: ‘진보’라는 이름에 속지 말라!)과 그 뒤를 봐주는 유엔군이, 이렇게 ‘뒤발리에 없는 뒤발리에주의’를 이어갔다.

 

 

  <아리스티드와 민중의 도전>

 

  하지만 민주당 출신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아이티 군부의 유혈통치와 플로리다에 몰려드는 아이티 난민들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또 민중봉기로 미국이 아이티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어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지침에 따른다는 조건부로 1994년 아리스티드의 권좌 복귀를 허락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최저임금 인하, 공공부문 노동자 4만5천 명 가운데 절반 해고, 관세와 수입규제 폐지, 농업의 구조조정(환금작물 재배로의 전환) 등이 그 주된 내용이었는데, 아이티 민중은 이 프로그램을 ‘죽음의 계획’이라 불렀다. 이를 집행하기 위해 또 아리스티드 정권을 감시하러 미 해병대 2만 명이 함께 들어 왔다.

 

  아리스티드는 민영화 일정을 늦추는 저항은 했지만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의 명령에 상당 부분 굴복했던 까닭에 노동조합과 학생들의 지지를 일부 잃었다. 하지만 권좌에 복귀하자마자 쿠데타의 진원지이고 유혈통치를 일삼은 군대를 해산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여 여전히 민중 대다수의 신뢰를 받았다. 

  

  아리스티드는 연임금지 제도 때문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가 2000년 말 민중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된 뒤, 그 기대와 압력에 부응할 길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요구대로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여 노동조합들의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으나, 무상 식량배급소를 열었으며 최저임금도 두 배로 올렸다. 2만 개의 문맹퇴치 센터를 비롯해 과거 2백 년 동안에 세워진 학교보다 더 많은 학교를 세웠다. 이에 힘입어 문맹률이 1996년 85%에서 2003년 55%로 떨어졌다. 아동노동 착취 관행도 줄었다. 그는 1세기 전 배상금 명목으로 강탈해 간 1억5천만 프랑(2백10억 달러)을 돌려달라고 프랑스 정부에 요구하기도19) 했다.

 

  그는 거대 농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토지분배가 획기적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쫓겨난 뒤 옛 땅을 되찾으려는 지주와 농민들 간에 투쟁이 벌어진 것으로 보아 얼마쯤이라도 시행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얼마쯤의 좌선회는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지원 덕택에 가능했는데, 베네수엘라는 염가로 석유를 공급해 주고20) 쿠바는 무료로 의사를 보내주었던 것이다. 지난 10년간 쿠바는 6천 명이 넘는 의료진을 보냈고 쿠바에서 무상으로 의과대학을 마친 학생이 5백70명, 수료중인 학생이 5백40명이다. 이들은 섹스 관광의 유산으로 늘어나던 에이즈의 퇴치부터 서둘렀다.21)

 

  그러자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는 뒤늦게 2000년 선거의 공정성을 트집 잡아 원조를 끊고 약속된 미주 개발은행 4억 달러 대출금 지급을 봉쇄하는 등 압박에 들어갔다. 선거를 통해서는 더 이상 권력을 쥘 수가 없게 된 뮬라토 지배층은 대선 직후부터 정권 흔들기에 나섰었는데, 여기에 미국이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 결과, 아이티 정부 예산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국내총생산이 폭락하여 아리스티드의 지지도가 떨어졌다.  

  

 

  <쿠데타와 괴뢰정권>

 

  이런 상태에서 2004년 2월에는 아이티진보전선의 두목 샹블랭과 전 경찰청장 필립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들은 해산된 군대가 다시 재건되어 자기들이 권력을 장악하기를 바랐다. 아이티진보전선은 1991년 쿠데타 이후 손에 피를 묻힌 ‘죽음의 군대’를 개명(改名)한 테러조직이고, 샹블랭은 마쿠테 테러단 출신이다. 필립은 미국에서 훈련받았고22) 미 중앙정보국과 접촉해 왔다. 이들은 미국이 제공한 M16 소총, M60 기관총, 로켓추진식 수류탄 등 고성능 무기를 갖춘 소수 정예부대로 도미니카를 거쳐 아이티에 잠입했다. 그들은 점령한 도시마다 아리스티드를 지지한 정부 관리들을 색출하여 살해했다.

 

  아이티 경찰은 너무 약체여서 반군이 수도로 진격해 오는 것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아리스티드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지만 결정적 전투가 벌어질 시점에 이르러서 그의 지지층에게 총을 나눠주는 것을 망설였다. 남아공 정부에서 아이티와의 원조협정을 이행하려고 무기를 선적하고 아이티로 비행기를 보냈는데, 그는 이 비행기가 재급유를 위해 자메이카에 들렀을 때 이 비행기의 아이티 입국을 보류시켰다. 그리고서 반대파(이른바 ‘민주 야당’)와의 협상에 매달렸으나 반대파는 자기들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전격적으로 그를 납치했다. 반군의 수도 입성을 앞둔 2월 29일, 아리스티드는 한밤중에 납치되어 미군 비행기에 태워져 중앙아프리카로 내쫓겼다.23) 미국으로서는 격렬한 내전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미국이 쿠데타 세력과 한 통속임이 명백하게 드러나 민중이 외세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리고 아리스티드 체제가 사수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드 축출에는 프랑스와 캐나다도 한 몫을 거들었다. 2월 2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아이티 정부를 구하러 유엔군을 보내자”고 자메이카 외상이 호소했으나, 그들은 아리스티드가 야당과의 ‘권력분점 협정’에 서명하지 않는 한 유엔군을 보낼 수 없다고 하며 이 호소를 거절했다.

  

 

  미국이 아리스티드를 두 번이나 축출한 것은 아이티 민중의 해방을 짓밟기 위해서였음과 동시에 중남미 민중의 변혁적 진출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미국의 위세가 등등하던 시절이라 이 날강도 같은 납치극에 대해 이웃 나라들이 항의표시 한번 변변하게 하지 못했다.

 

  미국의 부시는 아리스티드를 납치한 바로 다음 날 해병대 선발대를 아이티에 투입하고, 유엔군24)을 결성해 주둔시켰다. 아이티 민중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회피하려고 유엔의 외피를 뒤집어 쓴 것이다. 부시는 미국의 앞잡이인 아이티진보전선 같은 테러단이 발호하여 아리스티드 지지층에게 보복을 가하는 것도 묵인했다. 여기서 부르주아 언론들이 이른바 ‘무장한 갱’ 또는 ‘키메라’라 불렀던 존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구실로 하여 유엔군의 점령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언론들이 말하는 ‘무장한 갱’이란 빈민가인 ‘시테 솔레이유’와 ‘벨 에어’ 등을 근거지로 하면서 아리스티드와 풀뿌리 운동단체인 ‘판미 라발라스’25)를 지지하는 무장한 빈민들이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라발라스는 오래 전에 아이티진보전선, 마쿠테 테러단과 경찰 등에 의해 분쇄되었을 것이다. 부르주아 언론은 가해자와 피해자, 원인과 결과를 기막히게 뒤바꿔 보도하는데, 이른바 이 ‘무장한 갱들’ 때문에 유엔군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실은 아리스티드가 기층민중과 이들 무장한 빈민 자위조직을 행동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에 고스란히 당한 것이다. 이는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로 차베스가 납치되자 카라카스의 빈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차베스를 구출했던 것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아이티에서는 불행하게도 2004년 아리스티드 납치극이 벌어지자마자 아이티진보전선 테러단이 시테 솔레이유 빈민가에 난입하여 라발라스 지지자 수백 명을 살해했다. 브라질 군인이 지휘하는 유엔군은 이들 우익 테러단과 경찰의 악행을 비호했을 뿐 아니라, 2005년과 2006년에는 스스로 시테 솔레이유에 난입하여 수십 명을 살해했다. 그들은 강간과 성폭행 등의 악행도 저질렀다.

 

  쿠데타를 이어받은 라토르튀 정부는 반동적인 괴뢰 정권으로, 해외 원조의 상당 부분을 착복했다. 농산물 관세 장벽을 낮추고, 농산물 보조금을 폐지했다. 테러단과 경찰이 아리스티드가 세운 학교들을 탄압했고, 농촌에는 옛 지주들이 되돌아 왔다. 그러나 뒤이은 2006년 선거는 미국의 기대를 깨고 라발라스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식물정권 만들기>

 

  현 대통령 르네 프레발은 1991년 아리스티드 정권에서 총리를 하던 사람이다. 1996년과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아리스티드의 분신이라고 선전해서 라발라스 지지자들에게 표를 얻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위에서 말한 이른바 ‘무장한 갱’들은 2006년 “프레발이 당선되면 무기를 버릴 것”이라고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프레발은 집권 후 자기를 당선시킨 ‘라발라스 가족당’과 거리를 두었다. 미국의 요구에 아리스티드만큼 맞서지 못했고 관료들의 부패도 막지 못했다. 첫 번 재임 때에는 연 2천5백만 달러 수익을 내던 국영 밀가루 공장을 단 9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민중은 두 번이나 기대를 걸었지만 점점 기대가 실망으로 기울어졌다. 그렇다고 뮬라토 지배층이 그를 신뢰한 것도 아니다. 아이티 경찰이 아리스티드 지지층을 습격하는 것을 프레발이 허락하지 않자, 부시 정권과 뮬라토 지배층은 그 악역을 유엔군에게 떠맡겨 유엔군의 빈민가 습격이 자주 일어났다. 

 

  프레발 정부의 이런 무능함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프레발 자신의 결단력 부족도 문제이지만 거기에는 미국의 지배전략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아이티 정부에게 원조를 보내는 방법을 쓰지 않고, 갖가지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을 통해 아이티 사회에서 직접 사업을 벌인다. 이들은 갖가지 기금과 구호금을 떠맡고 있는데 누구한테 위임받은 적도 없고 민중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이처럼 미국은, 치안은 유엔군에 맡기고, 물자는 비정부기구들을 통해 들여와서, 아이티 정부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3. 제국주의의 가장 큰 죄악은 자기통치 능력의 박탈과 파괴   


  아이티에서 제국주의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스페인 제국주의는 아이티 선주민의 씨를 말렸고, 프랑스 제국주의는 아이티 노예들의 무임금노동의 단물을 빨아 먹었다. 당시 흑인 노예의 평균 수명은 20세를 밑돌았다. 아이티 건국 후에도 프랑스는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의 노다지를 빼앗긴 분이 풀릴 때까지 도시와 마을을 짓부수고 자연자원을 약탈해 갔다. 반면, 아이티 민중들은 프랑스에서 배운 근대혁명 사상으로 프랑스와 대결했다.

 

  미 제국주의는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미국은 자본가들이 진출하여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여 돈을 벌었다. 농업시장 개방을 강요하여 미국 쌀을 팔아먹고, 아이티 경제를 미국 경제에 완전히 통합, 예속시켰다.26) 미국은 걸핏하면 군사 쿠데타를 배후조종 했고, 숱한 민중을 학살했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의 가장 큰 범죄는 살육이나 착취가 아니다. 그들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수백 년에 걸쳐 아이티를 식민지와 종속국으로 만들고, 그래도 안 되자 그 정부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그래도 안 되자 그 정부를 식물정권으로 만들어 아이티 민중의 ‘자기통치’ 능력을 철저히 빼앗고 파괴해 온 것이다.


  재난을 맞은 아이티 사람들을 비춰주는 서방 텔레비전 화면에는 두 종류의 인물 군상만이 주로 등장했다. 무너진 집 앞에서 넋을 잃은 ‘피해자’와 상점 유리를 깨고 물건을 집어 가는 ‘폭도’ 또는 ‘약탈자.’ 한쪽에는 오직 자비의 손길을 기다릴 뿐인 사람들이 있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는 흉악한 약탈자가 있다. 그런데도 아이티 정부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구호의 손길이 필요하고 유엔군이 필요하다는 식이다.27) 지진이 일어난 지 며칠 뒤부터는 이재민이 고통을 겪는 장면이 아니라 군중들의 혼란스런 약탈 장면이 화면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서방 텔레비전은 은연중에 “아이티 사람들은 자치 능력이 없다. 그들은 영혼이 없는28) 열등한 국민이므로 법과 질서를 부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퍼뜨린 것이다.

 

  여기서 잠깐 미국이 아이티를 직접 통치했던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은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은 정작 아이티에 대해서는 1915년 “아이티인들은 스스로 정부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국민들”이라고 그 점령을 정당화했다. 촘스키의 말을 들어보자. “... 보호령 시대에 아이티에서 미국의 만행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는 동안, 미국 언론은 침묵을 지키거나 정부에 대한 지지로 일관했다. 1917~1918년 <뉴욕 타임즈> 기사 색인을 들춰보면 아이티 사태에 관한 항목이 아예 없다.... 미국 언론은 아이티와 도미니카 국민들을 ‘깜둥이’ ‘잡종’ ‘해로운 존재’ ‘벌거벗은 검둥이떼’로 묘사하곤 했다...”29) 

 

 

  지금의 미국 정부는 윌슨처럼 노골적으로 한 국민을 2등 국민으로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미국 언론도 아이티 사람을 함부로 ‘깜둥이’라 조롱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티 정부가 무능해질수록, 아이티 민중사회가 자조(自助)의 능력을 잃어갈수록 유엔군 즉 제국주의 국가들의 합동군대의 주둔 명분은 커진다. 그러므로 아이티에서는 이 인종주의 문제가 여전히 주된 의제이다.

 

 

  서방 언론의 과오는 아이티의 가장 소중한 진실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텔레비전 속 모습과는 아주 다른, 민중들의 능동적인 실천이 있는 것이다. ‘아이티 리베르떼(Haiti Liberte)'30)의 기자 킴 아이브(Kim Ives)에 따르면 “아이티 사람들이 곳곳에서 스스로 주민위원회를 조직해 시신을 수습하고, 난민 캠프를 세우고, 치안을 확보했다”31)는 것이다. ’아이티 행동위원회‘의 빌 퀴글리(Bill Quigley)도 아이티 민중들의 자조(自助) 노력을 전해준다.32) 포르토프랭스의 각 지구마다 7인의 마을 지도자 네트워크가 있는데 미군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고발도 있다.33) 미국 전 대통령 클린턴도 “엄청난 파괴와 죽음을 겪고도 그들은 놀라울 만큼 침착하다.”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군과 유엔군은 주민위원회의 존재를 묵살하고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레드 존(Red Zone)' 내에서만 원조물자 배급과 외국인들의 구호 활동을 허용함으로써 아이티 민중들의 자조(自助) 노력을 묵살해 버렸다. 헬리콥터에서 떨어뜨려주거나 외국인 구호단체를 찾는 것 외에 구호를 받을 길이 없게 되자, 아이티 민중들은 ‘구호품 받기 경쟁’에 어쩔 수 없이 내몰렸다.  

 

   아이티에서 미국이 저지른 온갖 범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 헬리콥터가 원조 물자를 하늘에서 떨어뜨리거나 트럭 위에 버티고 선 미군이 몰려든 군중에게 물병을 던져주는 광경에서 아이티 사람들이 지금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군중이 잠깐 혼란을 빚는다고 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티 민중들이 상점에서 음식물을 집어 나온다 해서 함부로 사람을 쏴 죽이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풀뿌리 라디오 방송 ‘데모크라시나우(democracynow)’는 한 아이티인의 분노를 전했다. “우리는 그들이 던져주는 뼈다귀나 받아먹는 개가 아니다!”34)라고.

 

  

  여기서 잠깐, 지진피해 구호 과정에서 미국이 어떻게 처신했는지 정면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미 제국주의는 아이티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아이티로 들어가는 미 해군 장교들에게는 1915~1934년 아이티 점령의 역사를 연구하고 가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본래 지진 재난 구호의 상식은 사태 발생 72시간 안에 구호활동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알파도 ‘서둘러라!’이고, 오메가도 ‘서둘러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진이 일어나자 미군 병사와 군수 물자를 아이티로 수송하고 아이티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바다를 봉쇄하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포르토프랭스 공항을 점령한 미군은 구호물자를 싣고 온 ‘국경 없는 의사회’나 프랑스 수송기를 번번이 돌려보냈다. 세계 각국의 수색구조대 중에 아이티에 도착한 팀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루 2백여 대씩 이착륙한 비행기의 태반은 미군 수송기였다.

 

  몇몇 의사들은 절단용 수술 장비 도착을 기다리다 못해 시장에 달려가서 톱을 구해야 했다. 구호물자는 지진이 난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도시 내 ‘안전한 배급소’로 옮겨갔고, 국제 수색구조팀이 지진 뒤 일주일 동안 구해 낸 사람은 7십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국제적 인사들이 묵는 대형호텔이나 구조팀이 머문 건물 근처만 수색했을 뿐이다.

 

 

  미군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플로리다로 이송하는 것조차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미 국무장관 힐러리는 뻔뻔스럽게 미국 해군이 진료와 구호에 앞장섰다고 자랑했는데, 그가 언급한 대형 병원선은 지진이 난 지 8일 뒤에야 아이티에 입항했다. 첫 72시간을 흘려보내고도 120시간이 더 지나간 다음에야 입항한 것이다. 회원이 1만2천 명인 미국의 전국간호사연합은 지진이 나자 아이티를 도우러 떠나겠다는 뜻을 오바마 정부에 전했는데,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35)   

 

 

  아이티의 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서 인용한 ‘아이티 행동위원회’의 빌 퀴글리가 Znet에 올린 글에 따르면 2월 6일 현재, 수도권의 아이티 민중 가운데 백만 명이 살길을 찾아 시골로 되돌아간 것 말고도, 백만 명의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그동안 세계 각국이 보낸 구호물자를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세계식량기구 관계자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동안 보낸 구호물자들이 어디로 샜는지, 따져 물어야 하는데 대답해줄 데가 없다는 것이다.

  

 

     4. 구호 원조가 아니라 반제국주의 민중연대를!

  

  아이티 재건의 열쇠는 더 많은 원조인가? 아이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원조가 아니다.

  첫째, 그 원조는 아이티가 짊어진 대외 부채를 갚는 데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36) 아이티는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 등에 9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데, 원조가 구호에 돌려지지 않고 빚 갚는 데로 돌려진다면(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원조는 남 좋은 일 하는 꼴이 된다. 나아가, 이참에 빚 자체가 탕감돼야 한다. 그 빚은 아이티 민중을 수탈하고 아이티 경제를 파탄내고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티는 이번 재난에 각국으로부터 15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받았다고 하는데, 동남아시아 쓰나미 때도 그랬지만 약속한 금액의 상당 부분이 공수표가 될 개연성이 높다. 또 그 돈이 민중 생활의 개선에 쓰일지도 의심스럽다. 어떤 경로로든 빼돌려져서 부패한 관리와 뮬라토 지배층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37) 이런 우려를 증명하듯, 2월 7일 포르토프랭스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원조물자를 빼돌려 비공식 시장에 팔아먹은 관리들을 규탄하는 원성이 자자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말하자면, 원조를 빙자하여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 원조는 무상 원조여야지 빚을 주는 식이거나 그 사용처를 원조 공여국이 지시하는 것이어서는 진정한 원조라 할 수 없다.38)

 

  또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 2005년 미국 뉴올리언즈 카트리나 허리케인 이후의 재해 복구 사례를 보면 재해 복구가 민중의 삶에 또 다른 재난을 초래한다는 엄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스리랑카에서는 쓰나미가 쓸고 간 바닷가의 어민들이 딴 데로 강제 이주되었으며 그 자리에 고급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섰다. 개발 자본들이 바라던 바를 어촌이 파괴된 기회에 밀어붙인 것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해일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상수도 민영화 법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뉴올리언즈에서는 학교가 파괴된 틈을 타 ‘차터 스쿨’(사립학교처럼 운영의 재량권을 준 공립학교)가 대거 들어서고 기존의 교원노조 조합원들이 대량 해고되었다. 시체 수습과 처리는 독점업체가 맡아서 떼돈을 벌었다. 재난의 시기에 부르주아들은 자기들 뜻대로 사회를 개편하고 돈을 벌 기회를 노리는데, 이는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아이티 재난에 관해서 각국 기업들이 ‘재건 특수’를 노린다는 사실을 마치 당연한 일처럼 보도하고 있다.  

  

 

  셋째, 이번 지진과 최근의 허리케인 피해 등으로 아이티는 사회 기반시설 전반을 시급히 재건해야 한다. 이 재건에 적어도 5년의 기간이 걸리고, 백~백오십억 달러가39) 넘는 돈이 들 것이라고 한다. 수도를 옮기는 방안마저 거론되는 실정이므로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10년이 넘는, 더 나아가 한 세대에 걸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농업을 살리고 숲을 복원하는 대대적인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의 것들을 위해서는 단지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할 뿐 아니라, 민중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유시장의 명령을 거슬러 가며 자조와 자립의 노력을 치열하게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견지에서 원조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원조와 외자에 의지하다 체제가 무너지고 국가부도 위기까지 맞고 있는 동유럽 나라들의 실패를 보라! 

 


 

  그러기에 촘스키를 비롯해 세계의 여러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최근 아리스티드를 불러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아리스티드와 ‘라발라스 가족당’이 선거에 출마하는 것마저 금지돼 있는데, 절망에 빠진 아이티 민중들도 아리스티드가 다시 나라를 맡는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회복하고 사회와 국가를 재건하는 데 떨쳐나설 것이라고 하면서! 사실, 아이티 민중들은 진작부터 그것을 요구해 왔었다.

 

 

  그런데 아리스티드에게 정부를 맡기라는 주장은 유엔군과 지진 사태를 틈타 밀고 들어와 버젓이 대통령궁을 차지한 미군이 아이티에서 물러나라는 뜻을 담고 있다.40) 실제로 유엔군은 뮬라토 지배층과 민중을 압살하는 아이티 경찰을 비호하는 역할로 인해 강한 불신을 사서 재작년 식량 폭동 때 이미 민중으로부터 떠나라는 요구를 받았었다. 이처럼 민중이 요구하는 대로 유엔군과 미군이 떠나고 아리스티드 정권이 들어서서 아이티 문제를 아이티 민중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바른 길이다.41)

 


 

  G20 정상회의 주최를 계기로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아이티 민중의 불행에 동참하는 길은 무엇일까?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최근 아이티가 베네수엘라에 진 빚 3억 달러의 탕감을 선포하면서, “우리가 오히려 아이티에 ‘역사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미의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 살아온 우리도 현존하는 제국주의 세력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우리가 체험하고 있듯이 기후변화로 인류의 절멸마저 염려해야 할 만큼 자본과 제국이 탐욕과 파괴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 ‘역사적인42) 시간’에 우리의 인류연대 노력은 정말 보잘 것이 없다. 재건 사업에서 한 몫 챙기러 아이티를 찾는 기업인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자본은 그곳에 커다란 관심을 쏟는데43) 정작 인류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국의 사회운동은 그동안 별다른 관심과 노력을 보이지 못했다.  

 

  우리가 아이티를 진정으로 돕는 길은 헛수고가 될, 아니 미국의 군사적 지배와 경제적 수탈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며, 그럼으로써 아이티 민중의 절망을 연장시키는 데 들러리를 설 구호 원조가 아니다. 아이티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아이티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외세가 물러나고 민중권력이 수립되도록 반제국주의 전선에서 어깨 걸고 함께 연대투쟁하는 것이다. <끝>



1) 아이티 소식을 다루는 매체로는 ‘아이티 리베르떼’ 밖에도 Haitianalysis.com, 진보적 라디오 프로그램 ‘디모크라시나우(democracynow.org)’, 샌프란시스코의 독립 라디오방송과 Znet 등이 있다. haiti action committee, haiti support network라는 단체와 같이, 아이티 민중과 연대하는 운동그룹이 북미와 유럽에 여럿 있다.


2) 이때 일본 제국주의는 재난을 제대로 구휼하지 못하는 데 대해 일어나는 민중의 분노를 그 화살이 조선인에게 향하도록 공작하여 끔찍한 학살극을 조장했다.


3) 사망자는 탕산이 24만 명, 수마트라가 28만 명.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도 20만 명을 웃돈다. 이 모두, 아이티 지진보다 강도가 훨씬 셌다(탕산 7.8, 수마트라 9.0, 쓰나미 9.0). 위에 언급하지 않은 고베(1995, 일본) 지진의 경우, 인명 피해는 적었으나 물자 피해가 제일 커서(1,000억 달러) 아시아경제에까지 파급을 미쳤다. 


4) 아이티에서는 이들 ‘어린이 노예’를 ‘레스타베크’라 부른다.  


5) 진흙을 곱게 빻아 마가린과 소금을 넣어 반죽한 뒤, 햇빛에 말리면 아이들에게 한 끼 훌륭한(?) 밥이 된다! 2008년에 취재한 MBC 다큐 ‘세계와 나’에 따르면 이 과자 하나가 우리 돈으로 42원. 여러 날을 이것만 먹은 아이도 있고, 한 갓난애는 젖 대신 이것을 먹고 창자가 탈장되어 배가 불룩 나왔다. 


6) 프랑스인들이 백년 전에 물러갔는데 지금도 프랑스어를 쓴다는 것은 지배층인 뮬라토가 일반 민중과 자기들을 구별 짓기 위해 뿌리 깊은 분리정책을 쓰고 있음을 말해 준다. 


7) 아이티는 한때 세계 야구공 생산의 80%를 담당했다.


8) 16세기 스페인의 학자인 라스 카사스의 기록에 따르면 스페인인은 선주민들을 칼로 난자하고, 개에게 사지를 물어 뜯기게 하고, 밧줄로 묶어 말에 끌려 다니게 하고, 생매장도 했다. 


9) 이때 흑인노예는 8십만 명까지 이르렀다. 콩고, 기니, 세네갈 등 서부 아프리카 출신들이 많다.


10) 그 지도자는 투생 루베르튀르, 데살린, 페숑 등이다. 루베르튀르는 프랑스군과의 결정적 전투를 멈칫거리는 바람에 프랑스 포로로 잡혀가 처형당했다. 데살린이 투쟁을 이어받아 건국을 이루었다. 


11) 미국잡지 <네이션> 올해 1.19일자는 미국 독립선언서, 프랑스 인권선언과 아이티 혁명을 이렇게 불렀다.


12) 그래서 반세기가 지난 1862년에야 마지못해 독립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이티 독립을 인정할 당시의 미국 대통령 링컨은 노예해방을 수긍했을 뿐이지 그 폐지에 앞장을 선 사람이 아니다. 아이티 독립 인정의 대가로 미국은 아이티에서 미군기지 사용권을 얻어냈다.


13)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1770-1850)는 봉기 지도자인 ‘뚜생 로뵈르투르에게’라는 찬가에서 아이티 비극의 모든 걸 예견했다. “아무리 저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너를 쓰러뜨리더라도 살아라. 그리고 기운을 내라. 네 뒤엔 너를 위해 일할 힘들이 남아있으니까. 공기, 땅 그리고 하늘. 그 어떤 바람 한 줄기도 너를 잊을 수 없을 거다. 너에겐 아주 거대한 동맹군이 있다. 네 친구들은 환희이며 열망이며 사랑 그리고 정복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이다!


14) 점령을 지휘한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이었다. 이준 열사도, 호치민도 그에게 독립 운동을 도와달라는 청을 하러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보호령은 1934년까지 계속되었다.


15) 아이티에서는 미군을 철수시킨 1934년에, 공산당과 인민전선이 결성되었다.


16) ‘흑인주의’ 이념은 식민지인들의 ‘독립’에 한때 진보적인 구실을 했다. 이웃한 섬 마르티니크 출생의 에메 세제르가 20세기 중반 네그리튀드(흑인주의) 문학의 효시다. 그러나 그 이념은 집권자가 자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함에 따라 반동화했다.


17) 5-9억 달러로 추정된다. 국가재건의 큰 밑천이 될 액수다. 스위스은행 UBS에 아이티정부가 반환을 요청했으나 사실상 묵살되었다. 


18) 이 격동하는 과정에 풀뿌리 대중운동이 급속히 성장한다. 아리스티드가 이끈 주민자치운동단체 ‘판미 라발라스(Fanmi Lavalas)’가 ‘라발라스 가족당(Lavalas family party)’으로 발전해 훗날 2000년 선거에서 집권당이 된다. ‘분배 있는 성장’을 내세우는 점에서 서구 사민주의 노선과 비슷하지만, 빈민 투쟁과 결합돼 있었기 때문에 미 제국주의는 이들을 묵과할 수 없었다. 2004년 이후, 이들은 집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19) 프랑스 정부는 이 요구를 묵살했을 뿐 아니라 아들 뒤발리에의 망명을 받아주었다.


20) 베네수엘라는 2008년 식량위기 때도 364만톤의 식량을 아이티에 원조했고, 올해 지진이 나자 3억 달러의 빚을 탕감했을 뿐 아니라 무상으로 석유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21) 쿠바의 연대 정신은 호세 마르티의 사상에 뿌리를 두었다. 쿠바의 국부(國父) 호세 마르티는 “나는 공화국의 최초 법령이 쿠바인들이 인간의 완전한 존엄성에 대해 예찬할 수 있는 의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2) 미국의 앞잡이로 동원될 군인들은 파나마에 있다가 84년에 미국 조지아주 포트베닝으로 옮겨간 남미군사학교(SOA)에서 교육받고, 페루의 북부 정글에 있는 이퀴토스 훈련소에 가서 훈련한다.


23) 미국은 아리스티드의 ‘자발적 사임’이라 발표했으나 그가 다시 귀국하려는 것을 저지했다.


24) 처음엔 프랑스와 미국과 캐나다의 군인들로 구성되었다. 나중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군대가 가세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진보정권은 유엔군에 ‘민주적’ ‘인도적’인 외피를 제공했다.


25) 이 풀뿌리 민중운동단체에 대해서는 앞의 주18을 참조


26) 그 여파로 살 길을 잃은 아이티 난민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자, 미국 정부는 그 유입을 막았다. 


27)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은 1.19일자 기사에서 미국 언론인 조지 앤 가이어의 글을 소개했다. 그는 아이티가  재건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서 주민들이 국제사회 즉 미국과 여러 강대국들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아이티 사람을 그 땅의 주인으로 존중하지 않는 주둔군에 대해 민중이 의심을 넘어 적개심마저 보이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반응이다. 이 글의 게재는 ‘프레시안’에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보여 준다.


28) 제국주의 세력이 끊임없이 퍼뜨린 인종주의적 편견도 이들을 경멸하게 하는 데 한 몫을 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 곽병찬 기자의 칼럼을 옮긴다. “서구의 극우파들은 자기들에 맞선 아이티인들의 종교 ‘부두교’를 비방해 왔다. 아이티인들을 부두교에 나오는 좀비(살아 있는 시체)와 은연중 동일시하기도 했다. 지진 직후 미국 목사 로버트슨이 ’아이티인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죄값으로 재앙을 겪었다‘고 저주한 것이 일례다. 그러나 부두교의 좀비는 ’아이티인들이 목숨 걸고 저항한 노예상태‘를 형상화한 것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좀비‘는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로서, 오히려 돈을 위해 영혼을 파는 서구 사회의 인간상에 해당한다. 저희의 파탄난 인간상을 아이티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29) 노암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이후 펴냄. 309쪽.


30) 아이티 소식을 다루는 주간신문. 아이티와 미국, 유럽, 캐나다에 배포되고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로 씌여진다. 해외의 아이티인들을 아이티와 묶어주는 구실을 한다.


31) 이 내용은 ‘민중의 소리’에 실린 까밀로(‘경계를 넘어’ 회원)의 기고글에서 다시 옮겼다.


32) ‘아이티 행동위원회’ 사이트(haitiaction.net) 참조. 이 단체는 아리스티드의 귀국을 주장하고 있다.


33) haitianalysis.com의 2.4일자에 실린 데이빗 에드워드의 글 참조.


34) 1. 22일 뉴스. 위에 인용한 까밀로의 글 참조. 


35) 위에 인용한 데이빗 에드워드의 글 참조.


36) 이를테면 아이티는 2003년 4천만 달러의 원조를 받고, 빚 갚기에 5천7백만 달러를 썼다.


37) 지진 이전에 아이티가 받은 해외 원조액의 절반은 유엔군 유지비용에 들어갔다. 


38) 프레발은 미국이 건네준 재건계획을 토대로 재건계획서를 작성해 2.1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원조공여국 회의에 제출했다. 자금관리는 논란 끝에 UN 주도 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는데 유엔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유니세프의 경우, 민간 모금액의 20% 이상을 자기들 행정비용으로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재건 특수를 따내려고 벌써 미국의 건설사들이 프레발과 개별 접촉을 시작했고, 유엔 사업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미국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며 벌써 ‘미국의 독식’에 대한 여타 나라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1일자 연합뉴스 참조. 


39) 페르난데스 도미니카 대통령은 백억 달러로 추정. 이 추정치는 ‘최소의 복구’에 한정한 액수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껏 모인 돈은 각국 정부가 약속한 15억 달러와 민간인 모금 30억 달러에 불과하다. 


40) 프랑스도 아이티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지진 후 사르코지는 원조 공여국 회의를 주도하고, 공항 사용과 관련해 미국과 신경전을 벌였다. 그리고 뒷전에서는 아이티 통신망 사업의 독점에 나섰다. 아이티 이웃에는 아직 프랑스령으로 통치되는 과달루뻬와 마르띠니끄 두 섬이 있다.


41) 최근 아리스티드가 망명지 남아공에서 귀국 의사를 밝히자 미국과 프랑스 등이 경계를 감추지 않았다. 


42) 지구온난화, 경제대공황과 전쟁 확대 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싹트면서 인류가 지금 어떤 길로 나아갈지를 선택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각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인류역사의 존망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우 특별한 ‘역사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43) 이미 ‘한국동서발전’과 ‘ESD'가 재건 특별수요를 따러 들어갔다. 그와 나란히 독도함이 발진할 예정이다.


 

 

 

 

 

 

점령 미군 추방하고 자주통일 이룩하자 !!!

민족통일 대단결 만년강국 추구하는 - 련방통추-

가져온 곳 : 
카페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
글쓴이 : 련방통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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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 - 불행한 기억과 마음, 감정, 고정관념 등을 정화하여 치유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풍요와 자유를 누리는 방법



본문에서 글쓴이가 말하는 것이 100% 맞는다고 단정하지 않으며 만에 하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호오포노포노

호오포노포노를 하는 방법은 쉽고 간단합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해보세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수시로 해야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덮고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불행한 기억과 마음, 감정, 고정관념 등을 정화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하면 불행한 기억과 마음, 감정, 고정관념 등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과 감정이 정화되고 치유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에서 벗어나면 문제의 원인을 볼 수 있게 되고 원인을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호오포노포노는 불행한 기억과 마음, 감정, 고정관념 등을 정화, 치유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불행한 기억과 마음, 감정, 고정관념 등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사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좋습니다.


호오포노포노와 함께 나사또를 추천합니다. 나사또는 마음 속으로 또는 소리를 내서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또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사또를 하면 호오포노포노를 하는 것과 거의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수시로 끊임없이 해야하는 것 등 방법은 같습니다.

(나사또는 호오포노포노와 마찬가지로 글쓴이가 창안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내면의 소리와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영감

호오포노포노와 나사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는 내면과의 연결입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또는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때는 내면과의 연결이 다른 때보다 더 잘 이루어지는데 이때 집중하고 있으면 '내면의 소리와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영감'을 얻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호오포노포노와 나사또를 할 때 '내면의 소리와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영감'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호오포노포노와 나사또를 할 때 내면의 소리와 느낌, 영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영감은 어느 순간 번뜩이며 뇌리를 스치면서 떠오르는 생각, 영상 등으로 찾아오는데 내면의 소리와 느낌과 동시에 또는 연결되어 오기도 합니다. 또한 '양심의 소리'도 내면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렇지만 내면의 소리와 느낌, 영감을 얻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호오포노포노와 나사또를 할 때 '내면의 소리와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영감'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내면의 소리와 느낌, 영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을 내면의 소리와 느낌 또는 영감으로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면의 소리와 느낌, 영감을 얻는 것은 처음에는 쉽지 않고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의 소리와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영감'에 집중하면서 호오포노포노와 나사또를 꾸준히 하면 어느 순간부터 점점 쉬워지고 분명해지게 될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용감하게 실천할 때 우리는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슴(내면)에서 시키는 것을 실천할 때 의식이 더욱 성장하며 자신감이 더 커지고 마음이 더 크고 강해집니다. 단지 그것이 내면이 아닌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기 4342년(서기 2009년)~

행세성각




블로그 원문:

http://theworldeveryonehappy.tistory.com/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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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입니다. 당의 혁신을 원하는 당원이 생각해 볼 문제들 <통합진보당> - 경선부정 사태, 대중적 진보정당,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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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록의 진실4 “친미(親美)국가도 자주(自主)를 할 수 있는가?” - 2007 남북정상회담, 친미와 친미주의, 반미와 반미주의
[논평] 이정미 대변인,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여론조작 의혹,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진보정의당> - 2012 대선
세종시는 충청도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것 - 국민참여당,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균형발전, 수도권과밀화해소
세종시 필사적으로 막는 이유 - 수도권 부동산 폭락(버블붕괴)
■독일 거주 한인학자의 4대강사업 비판■ - 대운하, 환경파괴, 생태계파괴, 홍수와 지하수고갈, 수질악화
4대강 사업의 5대 허구를 밝힌다! - 홍수, 물부족, 수질, 일자리, 죽은강
추모사업회,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모임에 대하여(야권대연합-후보단일화, 범국민정치참여)
MB의 미디어법 바로 알기
다문화 선동의 본질 - 외국인 노동자
우리 소통위!! 충격 애국동지 여러분 이거 봐주세요
장자연 리스트를 살포한 네티즌들을 잡아들이겠단다.
정말 명문입니다 (언소주, 조중동절독/광고주불매/삼성불매)
대한민국<100년 국부> 일본에 넘기려하네! (핵융합기술 인공태양 핵융합로 ITER 토카막 KSTAR)
국가생명윤리위 승인은 ‘편파적’ (황우석의 줄기세포)
경찰의 불법적 단속과 폭력진압에 대한 대응책(행정소송)
전라도 혐오증이 문제다 - 지역감정 문제의 핵심은 보수(?)정권의 경상도와 전라도 등의 지역차별
깨달음의 민족 -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고조선 등)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합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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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세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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